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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넓어진 세상으로 가는 하루

사주선생님입니다 2025. 12. 12. 15:57

예린이의 다음 일기

조금 더 넓어진 세상으로 가는 하루

어제의 하루가 별 스티커 하나로 기억되었다면, 오늘은 마음속에 작은 지도 하나가 그려진 날이었다. 예린이는 여전히 초등학생이지만, 생각은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자 햇빛이 책상 위로 길게 들어왔다. 예린이는 그 빛을 한참 바라보다가 노트를 꺼냈다. 오늘은 학교에서 과학 시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예린이는 어제 책 사이에 끼워 두었던 은행잎을 다시 꺼내 보았다. 조금 말라 있었지만, 여전히 예뻤다. “시간이 지나도 남는 게 있네.” 예린이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가방에 다시 넣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운동장에서는 친구들이 이미 뛰어놀고 있었다. 예린이는 잠깐 같이 뛰다가, 곧 교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일찍 와서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수업은 과학이었다. 주제는 ‘우리 몸의 피부’였다. 선생님은 피부가 우리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예린이는 순간 귀가 번쩍 열렸다. 피부는 그냥 겉에 있는 살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세균과 햇빛으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방패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선생님이 물었다. “피부가 다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린이는 손을 들었다. “깨끗이 씻고, 잘 낫게 도와줘야 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서 의사들이 필요하답니다.” 그 말에 예린이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쉬는 시간에 예린이는 공책에 작은 그림을 그렸다. 사람 팔과 다리, 그리고 피부를 보호하는 얇은 막 같은 그림이었다. 친구가 다가와 물었다. “왜 이런 거 그려?” 예린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사람 몸이 궁금해.” 친구는 잘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예린이는 괜찮았다. 모두가 같은 걸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어제의 다툼 이후로 배웠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는 또 하나의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편식하지 않기였다. 국에는 낯선 재료가 들어 있었고, 냄새가 조금 싫었다. 예린이는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입을 먹었다. 역시 맛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참고 먹을 수는 있었다. 예린이는 속으로 말했다. “공부도 이런 느낌일 거야. 처음엔 싫어도, 알면 괜찮아질지도 몰라.”

오후에는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다. 예린이는 집에서 여러 번 연습했지만, 여전히 긴장이 됐다. 연필을 쥔 손에 땀이 났다. 첫 문제를 적고, 두 번째 문제를 적을 때 잠깐 멈췄다. 헷갈리는 단어가 나왔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숨을 고르고, 소리를 다시 떠올렸다. 천천히, 또박또박 적었다. 시험이 끝난 뒤 결과를 바로 알 수는 없었지만, 예린이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느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방과 후에는 보건실에 갈 일이 있었다. 친구가 넘어져 무릎을 다쳤기 때문이다. 예린이는 함께 따라갔다. 보건 선생님은 상처를 깨끗이 닦고 연고를 발라 주셨다. 친구는 처음엔 울었지만, 곧 울음을 그쳤다. 예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프지만, 누군가 도와주면 괜찮아질 수 있구나.’ 그 순간, 예린이의 마음속에 아주 희미하지만 분명한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하얀 옷을 입고, 사람을 안심시키는 어른의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면서도 오늘의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피부 이야기, 받아쓰기 시험, 보건실의 냄새. 예린이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은 몸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그리고 아픈 사람 옆에 있는 건 무서운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글씨는 여전히 고르지 않았지만, 생각은 조금 더 깊어졌다.

잠들기 전, 예린이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배웠을까?’ 답은 바로 나왔다. 잘하는 날도 있고, 긴장하는 날도 있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경험 속에서 자란다는 것.

오늘의 예린이는 아직 미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오늘의 작은 호기심과 선택들이 쌓여, 언젠가 예린이를 더 큰 공부의 자리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로 데려갈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의 일기는 그 길 위에 놓인 또 하나의 발자국이었다.